[카드뉴스] ‘그럴 수도 있는’ 영혼 살인은 없다
 글쓴이 : 제주해바라기센터
작성일 : 2016-12-30 10:13   조회 : 4,282  














최근 美 명문 스탠포드 대학 안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으로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어졌습니다.     
이 학교 수영선수인 브록 터너(20)가 의식을 잃은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는데, 고작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은 것이지요.
솜방망이 처벌에도 불구, 성폭행범의 아버지는 “아들의 20년 인생 중 단 20분간의 행동”이었을 뿐이라며 “판결이 가혹하다”는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.
이에 미국인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지요. 그 아들에 그 아버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.
피해자의 괴로움을 배제한 이 같은 무개념, 익숙하지 않으신가요? 국내로 눈을 돌려보겠습니다.
우리나라 역시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서 벌어진 학부모·주민 3명의 집단 성폭행 사건으로 들끓고 있지요.
안타깝지만 이 사건과 관련해서도 몰상식이 목격됩니다.

- 주민A “젊은 사람들이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.”

- 주민B “분위기는 안 좋죠. 손님들도 떨어질 텐데, 적당히 했으면 좋겠어요.”

- 주민C “여자가 꼬리치면 안 넘어올 남자가 어디 있어?”

- 선태무 전남교육청 부교육감 “(늑장 보고 이유?) 사망 사고도 아니고…어떤 차원에서 보면 개인적인 측면도…일과 후에 있었거든요.”

피해자의 고통은 단 1g도 안중에 없는 발언들. 오히려 3명의 피의자나 마을 이미지를 걱정하고 있습니다. 심지어는 피해자 탓도 합니다.
아울러 이 사건의 피의자 가족들 역시 미국 사례와 마찬가지로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했지요.
이런 태도가 새로운 건 아닙니다. 2004년 1월 경남 밀양에서 일진 고교생들이 여중생 자매를 1년간 집단으로 성폭행한 사건, 기억하시나요? 당시 피해 학생이 들어야 했던 말입니다.

- “네가 밀양 물 다 흐려 놨다.” - 담당형사

- “네가 꼬리쳐서 그런 것 아니냐?” - 당시 피의자 부모

피해자에게 2중, 3중 고통을 안기는 이 같은 시선은 성폭행을 심각한 폭력이나 중대한 범죄가 아닌, 단지 가해자의 일탈 또는 극복 가능한 사사로운 문제로 치부하는 데서 비롯됩니다.
 하지만 성폭행은 ‘영혼 살인’과 다름없는 최악의 범죄일 뿐입니다.
독일의 한 공익광고는 성폭행이 남긴 트라우마를 ‘남성 성기+뱀’의 이미지로 형상화한 바 있습니다.
끔직한 기억으로서의 이 ‘뱀’은 피해 소녀가 백발이 되어 죽음에 이를 때까지 일평생 그녀의 몸을 기어 다닙니다. 살아있는 내내 영혼이 죽기를 반복해야 하는 것이지요.
이 고통스런 싸움을 견디다 못해 가해자를 직접 단죄한 국내 사례도 있습니다.
9살 때 당한 성폭행 때문에 도저히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던 김부남 씨는 21년이 지난 1991년, 당시 이웃이었던 가해자(송백권)를 찾아가 그를 살해하기에 이릅니다. 그녀는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지요.

“나는 사람이 아닌 짐승을 죽였다.”

성폭행이 주는 고통, 21년이 아니라 그 열 배의 시간이 지나도 결코 줄어들지 않습니다.
아래는 스탠포드 성폭행 사건의 피해 여성이 법정에서 낭독한 편지의 일부입니다.

“피고인이 잃은 건 선수 자격, 학위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이지만 나의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…나는 인간으로서 나의 가치, 에너지, 시간, 자신감, 목소리를 빼앗기고 있다.”

성폭행을 ‘그럴 수도 있는’ 것으로 믿는 이들이라면,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말입니다.




이성인 기자 silee@